2025. 3. 20. 05:45ㆍ뚝딱이의 대학원
1. 현재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사는 중
비록 미국에서 최고의 명문대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부러울만한 포닥 생활을 하고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입에 풀칠할 정도의 급여를 꼬박꼬박 잘 받고 있으며, 미국에서 아기도 낳았다.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며, 예쁜 아내와 못생겼지만 착한 고양이도 있다. 워라밸은 어떠한가? 가끔 예외가 있지만 자유로운 출퇴근의 워라벨은 좋지 않을 수가 없다.
2. 그럼에도, 정규직이 아니기에 우울하다
어떻게 보면 불행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무척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다. 현재의 직종이 정규직이 아님이 큰 원인이며, 교수님께 매년 계약 연장을 부탁해야 한다. 이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차라리 더 고되고 급여도 거의 없었지만, 잘릴 걱정을 하지 않던 대학원 생활이 그리울 정도이다. 사정이 조금 더 좋아 2년 혹은 3년의 계약을 한다 하면 이러한 불안이 해결될까? 그렇지 않을 듯싶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성은 모든 포닥의 불행에 대한 근원일 것이다. 아내나 자식이라도 없었으면 비정규직에 대한 불안감은 조금 나았을 수 있지만 결혼이나 자녀에 대한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3. 정규직이 되기 위하여...
포닥은 임시직이지만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유로운 직종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항상 취직 준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교수직만 바라봤지만, 이제는 대기업도 두루두루 살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이나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과 열정은 사그라든다. 안정적이게 돈을 벌 수 있으면 어떤 일이든 좋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워라벨, 정년, 연구 업무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조금 더 지나면 중소기업도 보게될 듯...
여타 이직도 그렇겠지만, 포닥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포닥의 주 업무는 연구이기에, 논문을 읽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한국에서 박사를 마친 나로서는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연구만 하기에도 많이 벅차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힘이 드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진짜 문제의 시작은, 연구 와중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4. 취업 준비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박사라서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욕심이 많아 좋은 곳에만 지원하기 때문일까? 취업 준비만 해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교에 지원하는 것은 한 학교만 해도 서류만으로 3일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논문 업적 정리가 주로 시간을 차지하는데, 왜 모든 학교의 지원 양식이 이렇게 상이한지... 평일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하는데, 한 두 번이면 모를까 수십 번을 지원하니 너무 지친다. 기업은 상대적으로 쉬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자소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연구와 기업에서의 업무를 연결하는 것이 참 어렵다. 여태 기업을 위해 연구를 한 게 아닌데,, 경력채용의 포닥은 알아야 할 것도 많다. 어렵게 서류를 통과했더라도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면접발표가 남았다. 경험이 쌓이며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떨리고 어렵다. 나의 부족한 면모는 결과적으로 탈락이라는 고배로 다가온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십 수 번의 탈락을 하다 보니 이제 자존감은 바닥이 된다.
5.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만약 취업이 수능과 같이 시험이었다면 내 부족한 점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보완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지원하였겠지..혹은 이 길은 아니야 하며 포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취업은 참 서술형 같은 (혹은 더 고된) 부분이다. 취업 과정에서 내가 받은 점수는 알 수 없다. 단지 '탈락'이라는 정보를 전달받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지원자가 부족한 것은 알지만 '어디서' '얼마나' 부족한 지는 알 수 없다. 이 점은 참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방향은 맞는데 실력이 부족한 것인가?
6. 정규직만 된다면 해결이 될까?
정규직이 된다고 해서 현재의 모든 불안과 걱정이 해결될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또 다르다. 교수가 되더라도,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더라도 난 참 걱정이 많다. '애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 '주어진 업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분명 해본 것은 많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는 것이 참 없는 느낌이다. 공부가 필요한 것 같은데, 자꾸 어떻게든 가벼운 지식을 늘리며 연구만 하고 있다. 바쁘게 내몰리는 환경 탓도 있겠지만, 집에 와서 육아하고 바로 누워버리는 나 자신의 탓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한 점은 죄책감으로, 무기력함으로 다가온다. 다시 교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떠오른다. '어디 한적한 곳에서 무언갈 제대로 알아가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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