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4. 23:56ㆍ뚝딱이의 대학원
어제 교수님께 아주 혼이 났다. 그 여파로 이것저것 하는 것에 우울함이 있고, 열정이라고 해야 하나 일을 하고 싶은 의지가 많이 꺾여버렸다. 집에서는 학교 가기 싫다고 늦잠을 자고, '학교 가기 싫어'라는 노래도 만들어 부르다가 아내한테 끌려 학교에 왔다. 거의 25년째 학교를 다니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학교를 다닐지, 학교가 얼마나 더 가기 싫을지 걱정만 앞선다.
혼난 경로는 이러하다. 같이 일하는 석사 1년 차 학생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길래 무슨 생각 하냐고 했다가, 가볍게 시작한 연구 얘기로부터 같이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Figure가 잘못 기입된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a를 b로 나눠야 할 것을 c로 나누어 전체적인 결과에 오류가 있었다. 이 학생은 b와 c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Figure 1개가 잘못 기입된 것이다. 나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학생에게 개념을 다시 알려주고, 그래프에서 잘못된 점을 같이 고쳐 주었다. 그리고 기존 Figure를 삭제한 뒤 새로 만든 Figure를 논문에 기입, 이 점을 회의 때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오류가 있긴 했지만, 크리티컬 하진 않았고, 지금이라도 고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은 아주 노발대발 하셨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르느냐, 애초에 뭘 이해하고 있었던 거냐 등등.. 교수님은 전후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옆이 있던 문제의 학생 대신 나에게 이런저런 화를 내셨다. 얼마나 심했냐면 같이 회의에 있던 다른 교수님이 (평소에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자기도 수학적인 실수를 한다고 나를 변호해 주셨다.난 억울했지만 그냥 그 말들을 담담히 들었다. 옆에 학생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내가 더 앞 순위의 저자이고, 포닥이니 책임을 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2. 신입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학생한테 이런 수모?를 겪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3. 학생의 탓을 함으로써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회의에서도 혼이 났지만, 개별 미팅 시간에도 아주 혼이 났다. 두 번 세 번 확인하라는 둥... 학생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린다고 했지만 말씀을 드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검토를 더더더 꼼꼼히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옆에서 계속 봐줬는데 아직도 개념을 이해를 못 한 것과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한 것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실은 나도 화가 난다..
그럼에도 (남탓을 하지 않고, 혼남을 받아들인)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른은 아랫사람이 더 발전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진짜 책임자가 되었을 때 (내가 모욕을 들었다 하더라도) 아랫사람 (혹은 학생)의 실수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여러 모욕을 들은 나는 아직도 가슴이 얼얼하다. 내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다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아침에 다른 학생들보다 한두 시간 일찍 오던 것도 그만두었다.
자꾸만 같은 실수를 한다면 화를 너무 안 내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건 초등학교 6학년 수준도 알겠다', '아주 초보적인 개념도 없다' 등등의 발언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런 문제를 줄일 수 있을 지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분명 화를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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